애프터썬 (Aftersun)
2024. 8. 31.

8월 30일 광화문 씨네큐브
씨네토크 with 안희연 시인
 

애프터썬

 
 
01
여름을 보내며
 
 여름을 보내주는 마음으로 씨네토크를 예매했다. 나의 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밀도 높은 시간이었다. 길고도 깊은 계절을 보냈다. 그런 여름을 왠지 이 영화와 함께라면 웃으면서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아름다운 영화일 줄만 알았는데 먹먹한 여운을 남기는, 끝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되는 어떤 여름 같은 영화였다.
 영화는 어린 시절의 소피가 아버지와 보낸 여름 휴가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보냈지만 보내주지 못하는 시간. 열한 살 소피의 여름은 계속해서 소피를 붙들고 있는 듯하다. 동시에 영화가 끝난 뒤부터는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나는 여름의 끝자락에서 햇볕에 그을린 어둠을 생각한다.
 
 
 
 
02
우리는 모두 그해 여름이라는 식물을 돌본다 (안희연 시인의 말과 글 중에서)
 
 안희연 시인님과 남선우 기자님의 씨네토크 시간이 참 좋았다. 영화가 끝난 뒤, 말문을 열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영화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 시간 동안 오고간 표현을 빌려 적고자 한다.
 시차 혹은 격차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의 낙차가 있기에 완성되는 감정이 있다. 소피와 캘럼 사이의 시차, 그리고 사랑. 그해 여름 캘럼의 나이가 되기까지 그해 여름의 기억과 기록은 끝나지 않고 소피를 붙들었을 것이다. 붙들고 붙잡으며 때로는 넘어뜨리기도, 또 때로는 지탱해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영화 애프터썬은 '오래 붙들리는' 영화로 남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같은 마음을 붙들고 공명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내가 태양을 볼 수 있으면 나는 우리가 같은 태양을 볼 수 있단 사실을 생각해.
그러면 우리가 같은 공간에 없어도, 함께 있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것 같아.
뭔지 알지.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 같은 기분 말이야.
 
 
 
 
03
자귀
 
 
오늘부로 너의 모든 계절을 만났어
 
신비로운 꽃을 피우고
고개를 떨군 채 차곡차곡 말라가고
앙상한 가지 위에 흰 눈을 받아 안는 너의 모든 계절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내 안에서 이야기가 될 수 있게
기다렸어
 
한 존재를 안다고 말하기까지
매일매일 건너왔고
 
건너왔다는 건
두 번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일 거야
 
내가 볼 때
너도 보았겠지
 
너는 걷거나 말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목격자가 될 수 있고
 
내가 어떤 표정으로 네 앞에 서 있었는지는
오직 너만이 알 테니까
 
살아 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나눠 가진 것
동심원을 그리며 가라앉은 것
 
죽지 마 살아 있어줘
조약돌 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거울이 되어주는 풍경들
가라앉은 말이 더 낮게 가라앉는 동안
 
새잎은 말려 있다
말려 있다가 피어난다
아침, 노트를 펼쳐
펼쳐지는 영혼이라 적을 때
 
멀리서 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겪고 있다
잎이 떨어지는 순간마다 귀가 아프다
 
(안희연, 「자귀」  『당근밭 걷기』 중에서)
 
 
-
 화자는 나무 앞에서 "내가 볼 때 / 너도 보았겠지"라는 발견에 이른다. 실은 마주보는 것이었겠다는 발견으로부터 나무는 화자와 교감하는 고유한 '자귀'가 된다. 이들이 서로에게서 "어떤 표정"들을 봤다면, 그것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미세한 마음, 살아 있기에 품게 되는 복잡하고 해결되지 않는 무언가일 것이다. 환희나 슬픔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그 모두가 한곳에서 뒤범벅되느라 생겨난 빛, 살아 있는 자의 눈에서만 발견되는 빛 같은 것들이다. 화자와 자귀는 서로를 바라보며 삶의 미세하지만 중요한 장면들을 알아채고, 서로의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한다. 바라보는 일은 서로가 목격한 순간들을 공유하며 '우리'를 이루는 일, "시간의 목격자"가 되어 다른 이의 삶을 함께 겪는 일이다. 이렇듯 한 존재를 '아는 일'이 겪는 일이라면, 그것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는 일은 건너는 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내가 모르는 슬픔까지 기꺼이 겪겠다는 결심으로만 누군가에게 건너올 수가 있다.
 
안희연 시집 『당근밭 걷기』 _ 해설: 슬픔의 모양과 사랑의 모양 (이재원 문학평론가) 중에서
 
 
 
 
04
Under Pressure
 
“나는 이 영화가 슬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슬픔을 초월하는 사랑에 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샬롯 웰스 감독


Under Pressure Aftersun Version

 

[playlist] 애프터썬(after sun, 2022) soundtrack OST

 
 
 
05
A Note from Charlotte Wells
 

 

A Note from Charlotte Wells

A note from AFTERSUN filmmaker Charlotte Wells on tapping memories of longing, love, and loss to bring her debut feature to life.

a24films.com

 
P.S. T.S. Eliot 

“At the still point of the turning world. Neither flesh nor fleshless; Neither from nor towards; at the still point, there the dance is, But neither arrest nor movement. And do not call it fixity, Where past and future are gathered. Neither movement from nor towards, Neither ascent nor decline. Except for the point, the still point, There would be no dance, and there is only th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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