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백 (Look Back)
2024. 9. 16.

 
 
룩 백 (2024)
ルックバック
Look Back
 
감독: 오시야마 키요타카
원작: 후지모토 타츠키
 


내 안에 있는 소화할 수 없었던 것들을 위해

"내 안에 있는 소화할 수 없었던 것들을, 억지로 소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그려서 소화할 수 있었느냐고 하면, 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을 영상화하는 데 있어서, 많은 분들이 관여해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후지모토 타츠키)
 
 이성복 시인은 '슬픔은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는 걸 표현하는 게 문학이라고 했다. 우린 어찌할 도리가 없는 슬픔을 삼키고 뜨거운 눈물을 머금으며 뿌리가 자라는 나무. 영화는 주인공 후지노의 청춘을 통해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준다. 삼키긴 했으나 소화할 수 없었던 것들이, 모양은 달라도 모두의 청춘 뒤편에 그늘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원작자 후지모토 타츠키는 자신도 놓친 부분을 잡아서 보여주었다며 호평을 했다고 한다. 수많은 그림쟁이와 창작자의 열정이 더해진 작품의 탄생 과정이야말로 '소화할 수 없었던 것들이 소화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하다. 
 
 
 
 
 17살에 저는 야마가타의 미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였기 때문에, 다들 이대로 그림이나 그려도 괜찮은 것인지 의문을 품었을 거예요. 그림을 그려 봤자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픈 마음에 이시노마키로 피해 복구 자원 봉사를 갔습니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는 저와 같은 생각일 미대생과 체육 대학 학생들이 잔뜩 있었어요. 이시노마키에 도착해서 주택 한 구역의 도랑을 가득 메운 흙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흙을 자루에 담아 트럭까지 운반하는 작업을 하루 내내 했지만, 도랑의 흙을 전부 퍼내지는 못했어요. 30명 정도가 온종일 달라붙어서 했는데도 해내지 못한 것에 무력감을 느꼈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도 다들 시무룩했죠. 함께 작업했던 체육 대학 학생이 "저희가 온 의미가 없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자원봉사는 그 후에 딱 한 번 더 다녀왔지만, 그걸 끝으로 더는 가지 않게 됐어요. 유화를 그리느라 돈이 들어서, 비용 마련을 위해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17살 때부터 쭉 그 무력감 같은 것이 절 떠나질 않아요. 또한 몇 번인가 슬픈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감각이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최근에 슬슬 이 감정을 발산하고자 <룩 백>이라는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려 봤더니 신기하게도 아주 약간은 마음의 정리가 된 것 같아요. 그 상태로 지금이 단편집을 보니까 무력감 속에서 그린 것뿐만 아니라 배를 엄청 곯으면서 그렸던 일, 내 친구와 그림 연습을 했던 일 등등이 하나둘 떠올랐어요. 왜 암울한 일만 되새겼는지 궁금해질 만큼 즐거운 추억들이 떠올랐습니다.
 
- 후지모토 타츠키, 단편집 <17-21> 후기
 
 
 
 
 


세상의 모든 그림쟁이와 크리에이터를 위해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이 영화를 세상의 모든 그림쟁이와 크리에이터를 위한 작품이라고 한다. (엔딩크레딧에서도 원화가나 애니메이터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고 한다.) 영화를 보며 후지노의 모습에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을 포개보았고 많은 부분에서 무언가가 공명하는 느낌을 받았다. 
 
 
"난 사실 그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즐겁지도 않고 하루 종일 그려도 전혀 완성되지 않아. 만화는 그냥 보는 게 좋지. 그리지 않는 편이 나아." (*이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럼 후지노는 왜 계속 그리는 거야?"
 
 그림 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후지노의 고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림을 그린 이유. 영화의 후반부에서 전해지는 감동은 이 영화의 러닝타임이 정녕 57분이 맞는지 의심하게 한다.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속에 밀도 높은 서사와 순도 높은 감정이 녹아 있다. 
 
 
 
-
 청춘에겐 장래 희망 같은 말보다 오늘 완성하지 못할 그림을 위해 펜을 놓지 않는 열정과 집념이 어울린다. 우리에게도 그런 오늘이 있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지만 오늘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계속되는 이야기가 있을 테고, 샤크 킥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Light song _ Look Back OST

 

'수의 초록 >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딸에 대하여  (11) 2024.09.23
애프터썬 (Aftersun)  (8) 2024.08.31